주변에서 "이 주식 좋다더라"는 말에 흔들려 매수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십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투자 초반에는 커뮤니티 추천 종목이나 유명 인플루언서가 언급한 종목을 따라 샀다가 손실을 봤습니다. 그 이후로 "내가 직접 걸러내지 않으면 결국 남의 판단에 기대는 것"이라는 생각이 생겼고, 그때부터 스크리닝 방식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만 개 종목,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
전 세계 주식 시장에 상장된 기업 수는 수만 개에 달합니다. 이것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스크리너(Screener)입니다. 스크리너란 투자자가 원하는 재무 조건을 설정하면 해당 조건을 충족하는 종목만 걸러주는 필터링 도구입니다. 증권사 HTS나 인베스팅닷컴, TIKR 같은 플랫폼에서 제공합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봐야 하는 것이 밸류에이션(Valuation)입니다. 밸류에이션이란 현재 주가가 기업의 실제 가치에 비해 얼마나 비싼지, 혹은 싼 지를 수치로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으면 투자자에게 남는 것이 없습니다. 워런 버핏의 오른팔 찰리 멍거가 "가격과 무관하게 좋은 아이디어란 없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스크리닝 초기에 가장 유용한 지표는 EV/EBIT입니다. EV/EBIT란 기업의 총 가치(시가총액에 부채를 더하고 현금을 뺀 값)를 영업이익으로 나눈 배수로, 기업을 인수할 때 실제로 얼마나 비용이 드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단순 PER(주가수익비율)보다 부채 상태까지 반영하기 때문에 재무 건전성이 좋은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일반적으로 EV/EBIT 15배 이하를 기준으로 설정하면 전체 상장 종목의 약 80%가 걸러집니다. 처음에는 이 기준이 너무 엄격하지 않냐는 생각도 했지만, 이 기준을 낮출수록 고평가 종목에 걸릴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핵심 스크리닝 조건 3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EV/EBIT 15배 이하: 가격 대비 실적이 합리적인 기업 선별
- ROA 10% 이상: 자산을 효율적으로 굴리는 기업 선별
- 매출 성장률 플러스(+): 최소한 역성장하지 않는 기업 선별
숫자가 말해주는 것, 숫자가 숨기는 것
밸류에이션 필터를 통과한 종목 중에서 다음으로 살펴봐야 하는 지표가 ROA(자기 자본이익률)입니다. ROA(Return on Assets)란 기업이 보유한 총자산으로 얼마나 많은 이익을 창출했는지 나타내는 수익성 지표입니다. 같은 이익을 내더라도 자산을 적게 쓴 기업이 더 효율적인 기업입니다. ROA 10% 이상을 기준으로 설정하면 전체 상장 종목 중 약 1% 수준만 남습니다. 처음 이 수치를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만큼 진짜 좋은 기업이 드물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찰리 멍거는 "기업이 40년간 자본에 6%의 수익을 낸다면, 당신도 결국 6% 수준의 수익을 얻게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ROA가 높은 기업은 장기적으로 주주에게도 높은 수익을 돌려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이 ROA를 스크리닝 기준에 포함하는 이유입니다.
성장률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매출 성장률이 높다고 해서 미래에도 그 성장이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실제로 2014년까지 연평균 20% 이상 성장하던 바이오젠(Biogen)이 이후 갑자기 성장을 멈추면서 당시 고가에 매수한 투자자들이 장기간 수익을 내지 못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장률을 '가산점' 정도로 봅니다. 역성장 기업은 걸러내되, 성장률 자체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지는 않습니다.
한편, 스크리닝으로 후보군이 좁혀졌더라도 각 종목의 재무 신뢰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최근 12개월 영업이익(EBIT)이 전년도와 비교해 갑자기 튀어 오른 수치라면, 그것이 반복 가능한 실적인지 일회성 이익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을 건너뛰었다가 '플루크(fluke)', 즉 일회성 실적에 속아 손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안전마진(Margin of Safety) 확보도 빠트릴 수 없는 개념입니다. 안전마진이란 추정한 기업의 적정 가치보다 20~30% 이상 할인된 가격에 매수하여, 분석에 오차가 생기더라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확보하는 방어적 여유 공간입니다. 가치투자의 창시자 벤저민 그레이엄이 강조한 원칙이기도 합니다(출처: Investopedia).
실전에서 검증해 보니
스크리닝은 출발점일 뿐입니다. 제가 직접 특정 스크리닝 결과를 바탕으로 종목을 추적해 봤는데, 결과가 흥미로웠습니다. 동일한 조건으로 걸러진 종목 5개를 분석한 결과, META(메타)와 MRK(머크)는 이후 상당한 수익을 냈습니다. 반면 Target, UPS, BHP는 기대 이하의 성과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META와 MRK의 수익이 나머지 세 종목의 손실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습니다. 이것이 분산투자의 힘입니다.
PBR(주가순자산비율)도 실전에서 자주 참고하는 지표입니다. PBR이란 현재 주가를 주당 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으로, 1배 미만이면 이론적으로 회사를 청산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주가가 낮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종목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른바 가치 함정(Value Trap), 즉 싸 보이지만 구조적으로 회복이 어려운 기업도 분명 존재합니다. 제가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싶었던 순간이, PBR이 1배 미만이어도 업황이 지속적으로 나빠지는 기업을 놓쳤을 때였습니다. 숫자가 싸다고 해서 기업이 싼 것은 아닙니다.
금융 섹터를 스크리닝에서 제외하는 것도 저는 동의합니다. 은행이나 보험사는 자산의 성격이 일반 기업과 전혀 달라서 같은 ROA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PER이 1배 수준인 일부 소형 은행 종목을 분석해 봤는데, 보유 자산의 리스크를 속속들이 파악하지 않고서는 "싸다"라고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미국 금융감독원(SEC)도 금융기업 재무 분석 시 일반 기업과 다른 기준을 적용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출처: U.S. SEC).
스크리닝을 반복하다 보면 단순히 지표를 체크하는 것을 넘어, 어떤 지표 조합이 자신의 투자 철학과 맞는지 감이 생깁니다. FCF Yield(잉여현금흐름 수익률)나 부채비율을 추가하거나, 고배당주가 오히려 저조한 성과를 보였다는 백테스트 결과처럼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실제가 다른 경우도 꽤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필터를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투자자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스크리닝은 시간을 버는 도구입니다. 수만 개의 종목을 몇 가지 지표로 좁혀두고, 그 안에서 재무 신뢰성과 경제적 해자(경쟁사가 쉽게 따라오지 못하는 독점적 우위)를 직접 파악하는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완벽한 공식은 없지만, 적어도 "왜 이 주식이 싼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매수 버튼을 눌러도 늦지 않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